목차
1. 광대의 삶
2. 슬픈 광기
3. 쓸쓸한 진실

1. 광대의 삶
영화 '왕의 남자'를 처음 봤을 때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국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감상문을 쓰라며 틀어주셨다. 그때는 솔직히 말해 재미없었다. 사극이라 말투도 어렵고 내용도 잘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 다시 본 영화 '왕의 남자'는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다가왔다. 이준기와 감우성의 연기가 얼마나 뛰어난지 그때야 제대로 알게 됐다. 특히 이준기가 연기한 공길의 화려한 춤사위와 슬픈 눈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우연히 케이블 TV에서 '왕의 남자'를 하길래 다시 봤다. 어른이 되어 보니 영화 속 정치적 메시지와 풍자가 더 잘 이해됐다. 연산군의 폭정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광대들의 이야기가 현대 사회와도 묘하게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회사에서 상사의 비위를 맞추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돌려 표현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조금씩은 광대의 삶을 사는 게 아닐까 싶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장생과 공길이 처음 궁에서 공연하는 장면이었다. 그 날카로운 풍자와 재담이 지금도 생생하다. 친구들과 술 마시다 가끔 영화 속 대사를 따라 하곤 했다. "조그만 눈 동그랗게 뜨고 낑낑대는 소리를 들으니까요~" 이 대사를 읊을 때마다 다들 웃음바다였다. 영화 '왕의 남자'의 화려한 색감과 의상도 기억에 남는다. 가끔 전통 공연을 볼 때면 저절로 이 영화가 떠오른다.
2. 슬픈 광기
영화 '왕의 남자'의 중반부는 연산군의 광기와 장생, 공길의 우정이 부딪히는 과정이 그려진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 아프고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연산군이 공길에게 집착하면서 장생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장면들이 가슴 아팠다. 대학시절 친한 친구가 내 여자친구에게 관심을 보였을 때의 미묘한 감정이 떠올랐다. 물론 영화만큼 극단적이진 않았지만, 그 묘한 배신감과 소외감이 비슷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연산군을 연기한 정진영의 연기가 정말 압권이었다. 권력과 외로움 사이에서 갈등하는 폭군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어릴 때는 그저 무서운 왕으로만 봤는데, 다시 보니 그의 슬픔과 광기가 공존하는 복잡한 캐릭터라는 걸 알게 됐다. 지난주 회사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한 부장님이 직원들에게 갑자기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며 문득 연산군이 생각났다. 권력을 가진 자의 외로움과 두려움이 종종 폭력으로 표출된다는 게 이해가 됐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장생이 공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군대 시절 전우애를 느꼈던 순간이 생각났다. 힘든 훈련 중에 서로를 챙겨주던 그 마음이 장생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요즘은 그런 순수한 우정을 느끼기 힘든 것 같아 아쉽다. 영화 '왕의 남자'의 중간중간 삽입된 줄타기 장면들도 인상적이었다. 위태로운 줄 위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공길의 모습이 결국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모습 같았다. 작년에 전통 줄타기 공연을 직접 봤는데, 그때도 이 영화가 떠올랐다. 실제 줄타기는 영화보다 더 위험해 보였지만, 그만큼 더 짜릿한 감동이 있었다. 영화 '왕의 남자'가 단순한 사극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욕망과 권력, 그리고 예술의 관계를 탐구하는 깊이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3. 씁쓸한 진실
영화 '왕의 남자'의 마지막 부분은 정말 충격적이고 슬펐다. 특히 장생의 최후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하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군 제대 후 복학해서 영화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첫 번째 토론 주제가 영화 '왕의 남자'였다. 그때 결말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누군가는 장생의 죽음이 불가피한 비극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권력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라고 했다. 각자 다른 시각으로 영화를 봤다는 게 흥미로웠다. 영화 '왕의 남자'가 개봉했을 당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뉴스를 봤다. 그때는 왜 이렇게 인기 있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지금은 완전히 이해가 된다.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이야기와 화려한 영상미,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이 만들어낸 걸작이었다. 특히 옛날 우리 전통 공연의 모습을 이렇게 생생하게 재현한 영화는 드물었다. 며칠 전 포털 사이트에서 우연히 전통 탈춤 공연 소식을 봤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영화 '왕의 남자' 덕분에 관심이 생겨 예매까지 했다. 이번 주말에 아버지와 함께 볼 예정이다. 문화유산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 준 영화 '왕의 남자'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장생과 공길의 광대 분장이 현대의 아이돌 메이크업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외모로 대중의 시선을 끌지만, 결국 그들도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연기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닮아있다. 지난달 콘서트에서 본 아이돌의 화려한 공연이 문득 떠올랐다. 그들의 웃는 얼굴 뒤에 숨겨진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영화 '왕의 남자'는 이렇게 현대 사회의 여러 면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결국 권력과 예술, 그리고 인간관계의 본질은 시대가 변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한국 영화 중 하나인 '왕의 남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